○ 전통 농업 문화유산 황룡리 용기
충남 보령시 청라면 황룡리 용머리 마을에는 마을기인 용기(龍旗)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. 2024년 현재 전해지는 용기(龍旗)가 처음 제작된 것은 1934년 가을입니다. 이 깃발은 지금까지 90년 동안 용머리 마을을 상징하고 주민의 공동체 의식과 농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 왔습니다.
오래된 깃발이지만 본래 형태나 채색이 원형을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. 또한 깃발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이 훼손되지 않았고 잘 관리되어 마을기로서 제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고, 지금도 유효하게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. 용머리 마을 사람들은 이 용기를 여전히 귀하고 자랑스러운 깃발로 여기고 있습니다. 이 용기야말로 마을 주민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농업 문화유산입니다.
○ 황무지 개척과 상조 전통의 용기
용머리는 보령시 청라면 황룡리 내에 있는 40여 호의 작은 마을입니다. 북쪽 오서산(791m)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, 대천, 광천, 청양, 부여 등 사방 도회지로부터 30여 리 떨어진 오지 산간 농촌 마을입니다. 주민들은 산기슭을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고, 높은 산에서 발원한 석우천, 황룡천에 여러 개의 보를 막아 개간한 농토에 물길을 내어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.
마을 사람들은 힘겨운 산 개간과 물길 내는 일에 동계(洞契: 현재도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.) 등을 조직하여 힘을 합쳐 함께 나서 왔습니다. 또한, 마을 사람들은 하늘 등 초자연적인 힘에 경의를 표하고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 왔습니다. 이는 마을의 서낭당, 거리제, 용기와 풍물패 연행 등의 민속으로도 이어오고 있습니다.
○ 하늘 감사와 마을 공동체 의식 제고의 제작 내력
용기는 1934년 마을 상여가 만들어질 때 함께 만든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. 마을에서는 당시 민화 화가를 초빙하여 마을 상여와 용기를 함께 그렸다고 합니다. 깃발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모금하여 대천장에서 광목을 샀고, 마을 부녀자 중 흠결 없는 정결한 여인들만 마을 사랑방에 모여 깃발 바느질을 하였다고 합니다. 그리고 그 집 마당에다 빈 깃발을 걸어놓고 상여와 같은 물감에 놋쇠 가루를 섞어 만든 물감으로 전면 청룡(靑龍) 뒷면 적룡(赤龍)의 용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.
이 용머리 용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양면에 용이 모두 그려져 있다는 점입니다. 다른 지역의 한쪽 면만 용이 그려진 것과는 분명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. 그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 크게 하고 있습니다. 크기는 347cm×166cm로 가로가 큰 깃발입니다. 용기의 위아래는 24개의 지네 발이 새겨져 있습니다. 대략 크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26cm×20cm 정도입니다. 농민들이 농사의 주요한 시기로 여기는 24절기를 상징한 것으로 보입니다.
기의 오른쪽에는 기꼬리가 세 개가 장식되어 있고, 왼쪽에는 연조(年條)가 새겨져 있습니다. ‘昭和九年歲甲戌秋七月旣望登龍’이라고 새겨 넣어 1934년 갑술 해 음력 7월 16일(양력 8월 25일) 완성되었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. 깃대와 깃발을 연결하는 기끈도 위와 아래에 각각 하나씩 만들어 놓았습니다.
이 깃발을 단 깃대는 9m 정도 나가는 대나무로 아랫면 지름 10cm 정도의 왕대로 만들어졌습니다. 인근 서해의 섬에서 구해 온 것입니다. 깃대의 맨 위에는 꿩장목을 달았는데, 꿩의 깃털 15개 내외를 묶어 만든 것으로 하늘의 기운을 내리받는 것으로 상징됩니다.
그 아래 청올치(깃수염), 깃방울, 깃수건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전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. 풍물을 연행하면서 용기를 들고 이동하는 일은 상당한 힘이 필요하고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.
하여 기운이 센 사람이 깃대를 들고 여러 사람이 각각 붙잡은 균형과 힘의 분산을 막기 위해 깃대 중간에 세 가닥의 버랫줄이 있습니다. 애당초 버랫줄은 깃발과 같은 재질의 광목이었으나 최근 오색의 나일론으로 대체하였습니다.
이외에도 기망(旗網)이 있어 기를 세우거나 이동할 때 받침으로 활용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습니다. 용기의 보관과 관리도 잘 되어 왔습니다. 용기가 처음 제작되고 나서부터 60여 년간 줄곧 한 곳에 박○○씨네 소 다락에 보관됐습니다.
이 소다락은 습기가 없고 공기도 잘 통하여 보관 장소로는 적정한 곳이었습니다. 1995년 마을회관이 건립되자 이후 마을회관 내에 별도 보관 장소를 만들고, 그 공간에 특별 제작한 보관함에 용기를 넣어 관리됐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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